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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해교육끝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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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일 2020-07-31 23:57:05 글쓴이 남효빈 조회수 11

     

    이별은 참 힘들다


    (지난 2019년 6월에 쓴 글입니다)

     

    내 친정 아버지는 집안의 장남이었다. 

    옛 시골사람들의 삶이 대개 그렇듯이 장남은 집안의 농삿일을 이어야 했으므로

    그는 초등학교 근처도 못가고 평생 농사만 지으셨다.

    그래서였겠지만 아버지는 늘 배움에 목말라하셨다. 

    자식들 만큼은 많이 가르치겠다는 보통의 부모들처럼

    나의 아버지도 아들들을 대처로 보내고 딸들 또한 논밭 주변에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하셨다.

    금이야 웬만큼 힘든 농사일은 다 기계가 하지만

    사람의 힘으로 모든일을 해야했던 옛농사가 아버지에게 얼마나 힘에 겨웠으면 농사의 대를 끊고자 하셨을까? 

    그런 아버지에 대하여 나만 아는 기억 하나가 있다. 

    등학교 3학년 정도였을까 비가 내리던 날 나는 학교에 갔다 집에 돌아오고 있었는데 

    가 대문에서 마당으로 들어가며 어머니를 부르려던 순간

    솔솔 내리는 비 사이로 나는 평생 잊지못할 풍경을 보게되었다. 

    ​그것은 방의 한지문이 열려있었고 밥상을 놓고 두 분이 밖을 향해 앉아서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뭔가를 가르치고 계시는 모습이었다.  

    순간을 찍는 카메라처럼 내 눈에 잡혀버린 그 풍경...

    교 구경도 못하셨지만 아버지는 이미 한글을 익히시고 어머니께 익혀 드리고 있었던 참이었던것이다. 

    엄​마~ 하고 부르려던 것도 잊어버리고 나는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던것 같다.. 아마 그랬을것이다... 

    지금도 그 날의 그 장면이 정지된 화면 처럼 내 머릿속에 또렷이 저장되어 있다. 

    파초의 커다란 잎사귀위로 빗방울이 또르르 떨어지고 나무판재로 두른 울타리가 비어 젖어 검어져 있고 

    작은 갈색의나무밥상과..... 

    습게도 그날 한글공부 자료로 쓰인 것은 가요가 들어있는 낡은 노래책이 었다 (아마 오빠들이 방학에 놓고 간것이 분명한) 

    두분 공부하는 모습의 순간은

    누군가가 멋지게 연출하여 찍어놓은 한지문틀액자 속에 들어 있는 사진같았다. 

    세상의 자식들은

    자신의 부모에 관한 가장 기억나는 풍경을 몇가지씩 가슴에 담아두고들 있다. 

    그것이

    부모에 대한 대표 이미지이며 자녀의 정서에 평생 영향을 미친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부모님은 내게 최고의 인생샷을 선물해 주셨다 생각한다.

    ​*

    *

    *

    이 마을에 살러와서 정보화마을 일을 하게된 이듬해  

    2014년 1월3일 나는 심곡마을회관에 문해교실을 개설했다. 

    문해교실은 명실공히 심곡마을의 작은 학교로서 무려 5년반이라는 짧지않은 세월을 이어왔다. 

    한글공부와 글쓰기, 동화책 읽어드리기,수학기초, 생활알파벹,

    세상돌아가는 뉴스와 운동,각종 미술활동 등 종합비타민과 같은 좋은 선물을 마을어르신들과 누릴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헌신적인 담당선생님의 애씀과 마을통장님의 특별한 관심속에서 

    식사까지 직접 챙겨드리며 이 보물과같은 시간들을 유지해 왔다. 

    그러기에 어르신들이 그 시간만큼은 참 행복해 하셨는데. 

    공부하시던 어르신들의 고령화와 건강문제,

    그리고 다음 연령대 형님들의 관심부족, 등등으로 너무나 아쉽게도 이 좋은 프로그램이  끝나게되었다. 

    종료하던날 그동안 수고하신 민유경 선생님과 조촐하게 송별식사를 함께했고

    한사람씩 안고 눈물의 작별인사를 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오륙여년의 시간이 어디그리 짧은 세월이던가? 

    이별은 참 어려웠다...... 

    그동안 눈이오나 비가오나

    이 작은 마을에 선생님들이 방문하여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놓고 함께 공부하고 활동하면서 웃고 울었던 많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연극공연도 했고, 소풍도 갔고, 맛있는 음식을 나누고,

    며누리에게 편지도 써보고, 어르신들이 굽은 허리에 졸업 가운을 입고 학사모쓰고 연말 수료식을 했던 추억들... 

    어르신들에게는 경험하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로의 문을 열어 드렸으며, 

    마을관계자에게는 큰 보람이요 자부심이었던 문해교실이 이제 문을 닫았다. 

    그것은 선생님만 떠나는것이 아니었다.  

    마을에 매주 들어오던 신선한공기가 만들어내는

    '사람 사는것 같은 마을'의 힘이 함께 떠나는 의미도 가진다. 

    도시만큼이나 물질주의가 팽배한 시골마을에서

    조건없이 많은것을 담뿍 안겨주고 떠나는

    문해교실 담당 민유경 선생님(그외 우리마을을 거쳐간 여러 선생님들)~! 


    어려웠던 위기를 함께 넘긴 일이 한두번이 아닌 이 선생님을 보면서

    '아~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구나'며 늘 감동받는 시간들이었다. 

    교육이란 돈으로 계산할수 없는것이다. 

    마치'자식이 오늘 금액적으로 얼마치 만큼 자랐는가'라는 질문이 말이 되지 않듯이. 

    콩나물에 물을 주듯이,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교육이란 그런것이다. 

    나라에서 보조금으로 개설하는 무슨무슨 교실은 그 이름도 꽤나 많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내가 문해교실이 가장 으뜸이라고  주장하는것은  


    문해교육은 글을 읽고 듣고 쓰고 이해하고 생각하는 교육으로서 

    인간이면 가져야만 하는 가장 기본적인 도구를 가지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문해교육으로 사람들은 글자라는 도구를 가지게 되며

    그것을 통해 열려진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생각을 하게 되면서

    '사람다운 사람', '사람같은 사람'더 나아가

    '세상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을 만드는데  그 궁극적인 목적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선생님들을 교육하고 지원해 주신 동해시 평생학습관과

    심곡약천마을 문해교실에 관심과 개인적인 지원을 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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